정체성

by d_ijk_stra

1. 영사관에 가서 딸의 출생 신고를 마치고 왔다. 출생신고서에는 본적(本籍) 뿐만 아니라 본관(本貫)까지 한자로(!) 적어야 했는데, 스스로의 본관을 생각할 기회는 최근 십수년간 매우 드물었으므로 한자로 적을 자신이 없어서 잠시 당황했다. 다행히 스마트폰과 구글이 있으니 침착하게 검색하며, 짐짓 지체있는 집안 자식이니 이 정도는 문제없다는 척 해당 항목을 채웠다. ‘포미닛’의 2013년 발표곡 <이름이 뭐예요>에서 이름과 전화번호에 이어 ‘본관이 뭐예요~’ 하고 물어보면 웃기겠다는 생각을 하며…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워싱턴 호수를 바라보다가, 문득 이제 영락없는 이민자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업도 집도 그리고 빚도 (먼산) 다 미국에 있고, 이중국적이긴 하지만 엄연한 미국인을 키우고 있으니 누가 봐도 전형적인 이민 1세인 것이다. 미국에서 살기 시작한지 8년이 되었으니 이제 와서 새삼 스스로가 이민자라는 사실을 의식하는 것이 웃기지만, 정체성이란 환경이 변하는 만큼 빨리 변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내 정체성은 여전히 한국에서 스스로가 이민을 가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던 시절에 형성된 것이 거의 그대로 남아있는 모양인지, 미국에서 영어를 사용하며 회사를 다니고 있다는 스스로의 일상을 생각하면 왠지 나 자신의 모습이라고 받아들이기보단 ‘거 참 재밌고 신기한 사람이군!’ 하고 생각하게 된다.

2. 때로는 내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매여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으로서의 나’와 ‘미국 이민자로서의 나’라는 분리된 정체성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윤효근’과 ‘Hyokun Yun’은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다른 분야를 전공했으며, 둘의 인맥 사이에는 공통분모가 거의 없기 때문에, 어쩌면 ‘윤효근’과 ‘Hyokun Yun’이 별개의 사람이 되어 한국과 미국에서 독립적인 삶을 이어나간다 해도 썩 위화감이 없을만큼 두 정체성은 분리되어 있는 것 같다.

물론 가끔은 이 두 정체성이 동시에 발현되어야 하는 순간들이 있는데, 가장 전형적인 상황은 기계학습을 전공한 한국인을 만나는 것이다. 나는 기계학습을 미국에 와서야 공부하기 시작했으므로, 기계학습은 영어를 사용하는 Hyokun Yun으로서 공부해 왔다. 그런데 한국인이 내게 다가와서 한국어로 ‘제프 힌턴의 이 연구는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라고 말을 건네면, 순간 기계학습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개념들이 갑자기 좀 더 친근하고 개인적인 것으로 새롭게 비쳐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런 때는 내가 갖고 있는 언어로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상당히 이상한 기분이 든다.

이러한 정체성의 분리가 썩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지는 않는 것 같다. 내가 한국에서 기계학습을 공부했다면, 그래서 기계학습의 개념들이 늘 이렇게 친근하고 개인적인 것으로 느껴졌다면, 좀 더 욕심을 갖고 열심히 연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Hyokun Yun으로서의 일들을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아닌가, 싶은 것이다. 한국계 미국인으로 자라날 딸이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곤 했는데, 일단은 나 자신의 문제가 먼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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