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를 남기는 보람

by d_ijk_stra

이제 십년도 더 지난 학부 시절엔 학교에서 ‘브레멘’이란 밴드 동아리를 했었다. 페이스북에 동아리의 그룹 페이지가 있어 썩 활발하지는 않지만 종종 공연 소식 등이 올라오는데, 그럴 때마다 2003년 봄 언젠가의 동아리 모임이 떠오르곤 한다.

당시 회장 형은 썩 밝지 않은 표정으로 회의를 소집하고선, 우리 동아리가 과연 올해에 새로 회원을 모집해야 할지 여부를 얘기해 보자고 했다. 보통의 동아리라면 새 학년이 시작할 때마다 신입 회원을 모집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당시 동아리 브레멘은 선뜻 그런 결정을 쉽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 이전 해 겨울, 포항공대 각 동아리의 회장들이 모인 동아리 연합회에서는 ‘가등록’ 동아리였던 브레멘을 정식 동아리로 승격하는 것에 대해 과반수가 반대 의견을 표시했고, 따라서 2002년 뿐이 아닌 2003년에도 브레멘은 가등록 상태로 남아야 했던 것이다.

가등록 동아리는 동방을 가질 수 없고, 밴드 동아리는 연습할 공간이 필요하다. 2002년 내내 브레멘의 회원들은 학생회관의 대회의실을 빌려서 사용하느라 연습을 시작할 때마다 드럼과 앰프 등의 무거운 장비들을 옮겨와서 설치하고, 끝날 때면 해체해서 다시 옮겨놓아야 했다. 대회의실을 사용하는 것은 브레멘 뿐만이 아니기 때문에, 때로는 다른 동아리들이 사용하는 시간을 피해 새벽 세시에 연습을 시작했다가 일출을 보며 기숙사로 내려오기도 했다. 굳이 이런 고생을 한 학번 더 물려주어야 하는 걸까? 동아리 연합회를 통해 다른 학우들이 브레멘이란 동아리의 존재가치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몇몇 선배들은 굳이 신입생을 뽑을 필요 없이, 우리끼리만 이제까지 해오던 대로 재미있게 합주하다가 졸업하면서 정리하면 되지 않겠냐는 의견을 제시했다. 특별히 그 의견에 반박할만한 근거를 찾기는 어려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였는지 우리는 신입생을 뽑기로 결정했다. 훨씬 더 환경이 좋은 동아리가 많은데도 굳이 이 생고생을 하겠다고 나서는 변태같은 03학번 신입생들이 제법 있었고, 그들과 한 해 더 고생을 했고, 그 해 겨울 동아리연합회에서는 드디어 브레멘을 정식 동아리로 승인해 주었다. 그 날 정말 몸이 안좋았지만 술을 마시러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특별히 기념하려고 했던 것도 아닌데 어쩌다가 그 날의 폴라로이드 사진이 남아있다. 이듬해엔 드디어 우리만의 동방이 생겼고 – 음량 문제로 인해 주위의 동아리들에게는 상당히 안좋은 소식이었지만 – 이제 그로부터 십년이 넘게 흘렀으니 동방이 없는 시절을 겪은 세대는 동아리 역사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요즘 동아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사진들 너머의 이야기를 나는 전혀 알지 못한다. 학부를 졸업하고서는 바로 미국으로 넘어왔고, 한국에 남아있었더라도 02학번 선배가 아직까지 동아리 일에 관여하며 민폐를 부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무슨 음악을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회원들끼리 화목하게 지내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왠지 모를 이유로 우리가 그 때 그 회의에서 신입생을 뽑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적어도 아직까지는, 동방이 있고, 한 사람의 지갑에서는 나오기 힘든 금액에 상당하는 앰프며 드럼이며 하는 악기들이 있고, 그래서 혹시 다른 동아리에서 음악을 할 기회를 찾지 못한 학생이 기회를 찾을 수 있다. 공연이 끝나고 공연 사진들이 올라올 때마다 참으로 그 회의에서 그렇게 결정하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고, 새로운 조직에 들어가거나 모임에 참여할 때마다 이 생각을 하면서 더 좋은걸 남기고 떠나야겠다고 마음먹곤 한다.

사족: 십년도 더 된 이야기를 남겨놓는 변명이라면, 다른 누군가가 내 대신 이런 글을 남겼던 것 같지 않아서… 내가 아저씨가 되어서 자꾸 어렸을 때 생각만 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정말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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